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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송건호언론상 수상자 '강준만' 선정 |
2005-11-23 |
수상자 : 강준만
사회문제를 제기해 온 언론학자 … 12월 2일 시상식
한겨레신문사와 청암언론문화재단은 ‘제4회 송건호언론상’ 수상자로 강준만님을 뽑았습니다. 송건호언론상은 한겨레신문사 초대 사장으로 언론 외길 40년을 언론자유와 진실보도를 위해 바쳤던 고 송건호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02년 제정됐으며, 엄정한 심사를 거쳐 강준만님을 제4회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강준만님은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하는 언론학자로서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여 사회ㆍ역사적 맥락에서 언론과 대중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했고, 1997년부터 펴낸 <인물과 사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며 예리한 시각으로 문제의식을 일깨워 토론과 논쟁의 문화가 성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성실한 자세로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며 줄기차게 현실을 고민하는 강준만님의 발걸음은 계속되리라 믿습니다.
▶ 시상식: 2005년 12월 2일(금) 오후 6시30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19층 기자회견장
▶ 심사위원 :
- 심사위원장 정경희(언론인)
- 이해동(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 김태진(도서출판 다섯수레 대표)
- 방정배(성균관대 교수)
- 이명순(민언련 이사장)
- 변동현(전 한국방송학회장)
- 김영석(한국언론학회장)
▶ 문의: 청암언론문화재단 (02-710-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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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언론상> 소개
2002년 제정된 송건호언론상은 신문, 방송, 통신 등 각 분야에서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사회에 대한 공헌을 했거나 언론민주화에 기여하여 故 청암 송건호 선생의 언론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판단되는 개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된다. 이 상은 청암언론문화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주최 하면 시상 시기는 매년 12월 초순경이다. 상금은 한화 500만원이며, 기념조각품과 상패 그리고 부상으로 송건호전집 1질(20권) 이 수여된다. 2002년 제1회 수상자는 언론인 정경희 선생이며, 제2회 수상자는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님, 3회는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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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언론문화재단> 소개
2001년에 설립된 이 재단은 언론인의 정도를 지켰던 청암 송건호 선생의 뜻을 기려 민주언론 구현을 위한 활동틀 통해 민주적 언론문화를 창달하고 민주시민 사회를 정착시켜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재단 1대 이사장은 강만길 선생이며 현 2대 이사장은 이상희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재단의 사업은 다음과 같다.
1. 민주언론창달에 공헌하거나 해당사업에 큰 업적을 쌓은 이를 대상으로 한 “송건호언론상” 제정 및 시상
2. 우리사회 언론 및 역사, 그리고 제문화에 관한 조사ㆍ연구ㆍ출판사업
3. 시민참여 확대를 위한 시민 언론ㆍ미디어 교육 사업
4.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언론관련 토론회ㆍ심포지엄 개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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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무엇이 또 있을까요?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격려와 채찍질의 뜻으로 알고 상을 받겠습니다." 늘 다른 분들 상 받는 구경을 하면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을 받을 땐 그런 말을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이제서야 그 말뜻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만, ‘격려와 채찍질’의 뜻이라 하더라도 이 상은 제게 과분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앞섭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상을 받지 못하는 저의 심정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송건호 선생님을 개인적으론 알지 못했습니다만, 그 분의 사회적 의미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한국현대사와 언론사 공부를 할 때엔 그 분은 통찰을 제시해준 역사학자로 나타나셨고, 언론이 사회적 공기로 거듭 나기를 열망했을 땐 온몸으로 그 길을 제시해준 언론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지식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 앞에선 그 분은 범인으로선 너무도 따르기 어려운 길을 보여주셔서 많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거나 좌절케 했을 것입니다.
청암언론문화재단의 발족 선언문 제목은 '송건호 바이러스에 감염되자'였습니다. 과연 어떤 ‘바이러스’를 말한 것이었을까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해석하는 ‘송건호 바이러스’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겸손, 겸손, 겸손입니다. 의례적인 겸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처세술로서의 겸손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뼈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질로서의 겸손입니다.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님은 과거 송건호 선생님의 강연 활동을 회고하면서 '개인적으로는 20~30년 어린 후배들에게도 늘 형이라는 존칭을 쓸 정도로 깍듯하고 부드러운 분이 어떻게 저처럼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놀라곤 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도 송건호 선생님을 몇 번 뵈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송 선생님의 겸손에 놀랐습니다만, 전 그 땐 그 겸손의 가치와 무게를 잘 몰랐습니다. 그저 보기 드문 미덕을 갖고 계시는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후 김대중정권이 들어섰고 노무현정권도 탄생했습니다. 이 두 정권의 핵심 세력은 모두 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고생했던 분들입니다. 저는 두 정권이 잘 되길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실망스러운 일들이 벌어졌고, 저는 사회과학도의 자세로 그 원인이 무엇일까 내내 고민해 보았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겸손이었습니다. 두 정권 모두 겸손하지 못한 점이 있었습니다. 겸손은 정말 어려운 겁니다. 성경에 겸손을 역설한 구절이 32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겸손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우면 그랬을까요.
우리는 송건호 선생님이 온몸으로 ‘언행일치’를 실천하셨고, 주변의 그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옳게 사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가시밭길을 걸으셨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실했고 용감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역정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겸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도 ‘겸손 코드’로 보고자 합니다.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해방정국의 역사도 당시 모든 이들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후로도 그런 ‘겸손 부재’의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고, 오늘의 상황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뜻과 열망이 앞선 나머지 겸손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일을 할 때엔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조차 내부 성원들 사이에서 묵묵히 빛이 안나는 곳에 임하면서 ‘겸손 바이러스’로 결속을 다져주는 사람이 없다면 출발조차 기대하기 어렵지요. 송건호 선생님의 업적은 바로 그런 역할에도 있었던 게 아닐까요?
겸손은 사회과학적 개념은 아닙니다. 유능한 사회과학자일수록 그런 개념은 피하려고 하지요. 그러나 저는 서구 사회과학의 틀과 개념만으로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이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 해도 자신의 ‘인정 욕구’나 ‘도덕적 우월감’을 자제하는 겸손을 보일 때에 비로소 자신의 소신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건 서구 사회과학에선 찾기 어려운 답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도 다른 사람의 비판에 대해 속이 상하거나 분노했을 때 그 이유를 잘 뜯어보면 그건 제가 겸손하지 못한 탓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에 대한 비판을 권리로만 알고 남의 비판은 의무로 받아 들이지 않는 이중성이 문제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현미경으로 관찰하려 들면서 자신의 허물은 망원경으로도 보지 않으려는 독선과 오만이 문제였던 겁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송건호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인은 형평의식이 매우 강한 사람들입니다. 텍스트보다는 컨텍스트에 더 주목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아무리 옳은 주장을 펴더라도 그 주장을 펴는 사람의 자격과 행실을 따집니다. 텍스트에만 주목해달라는 주문은 무력합니다. 텍스트 생산자의 독선과 오만은 텍스트를 죽입니다. 겸손으로 무장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성실과 용기와 책임감도 같이 생겨납니다. 사회 진보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무기로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무엇이 또 있을까요?
저는 그게 바로 ‘송건호 바이러스’의 정체라고 믿습니다. 저는 ‘송건호 겸손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퍼지길 바랍니다. 앞으로 그 일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감히 이 상을 받습니다만, 두려운 마음은 여전히 어쩌질 못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겨레신문사